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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夏萬歲/역사전설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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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tonic love 2016. 9. 11. 22:16


~~~~~~~~~~ 歷史中査悉記錄誌 ~~~~~~~~~~

세월을 전혀 타지않은 미스테리 주인공이라는 소리를 듣는 예술가 쟈니남(조훈)선생님


앳띄어보여도 만화계 초창기인 1960년대에 활동했으니까 대한민국 만화계의

2세대 작가이며 놀라지마십시오~ 가요계에서도 2세대 인물이랍니다~

 
1940년대의 이난영씨 신카나리아씨 황금심씨 남인수씨 고복수씨 현인씨

김정구씨 한복남씨 그분들이 1세대 원조가수들이고
1960년대의 남일해씨 최희준씨 송춘희씨 이미자씨 박재란씨 송민도씨 라애심씨 한명숙씨

최정자씨 최숙자씨 그분들이 2세대가수이며
그 당시 째즈싱거로는 남석훈씨 쟈니리씨 정원씨 럭키차씨 차리박씨 박상록씨 후랭키손씨

김계자씨 이태신씨 그분들 역시 2세대 가수들이고 1960년대 대중예술계의 2세대중에

조훈님은 나이가 어린편인 10대의 소년대중문화예술인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 당시 나이는 15세 정도로 어렸어도 현재의 원로가수들과 같은 시대인 1960년대
같은 시대에서 어울리면서 활동했으므로 조훈선생님은 가요계에서도 2세대가 확실합니다~

물론 2세대 중에 나이가 조훈님보다 더 어린 소녀가수 하춘화씨는 그 당시 7세밖에

안됐으며 함께 공연하던 소녀아코디온니스트 김태영씨는 그 당시 8세밖에 안됐어도

2세대 가수들과 함께 공연을 하며 같은 시대를 살면 당연히 그들도 2세대 가수들인 것입니다~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인사에게 질문입니다]

2016년의 현재 활동하는 가수들이 5세대에서 6세대가 되죠?

15년마다 1세대로 계산한다면 문제는 현재 가요계에서 협회까지

좌지우지하는 인물들이 4세대가 될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지않은 앞에 세상일들은 전혀 모르므로 관심도 없을뿐더러 자신들의

생계에만 급급할뿐 이후에 자신들이 태어난 시대에서 부터 계산하여 기억하는것만 인정을 할뿐

자신들이 겪지않은 것은 관심밖이고 인정도 하려들지않고 선후배도 없고

더구나 어느 공연장에서는 제네 부모같은 대선배에게도 안듣는데서는 저희들끼리 쟤는 뭐야?

쟤는 뭐야? 하고 호칭을 쟤로 통하며 저희들끼리 막말하는데에 혐오감을 느꼈고

그 자체가 살벌해서 만정이 떨어질때가 많아 가수란 자체가 싫어질때가 많았었다.


조훈님을 구설의 도마위에 놓고 포섭은 물론 심어까지 놓은 모(?)담당들로 밤낮으로 작업상황을

화면감시까지 하게하며 저속한 행위를 현재도 하는 혐오스러운 짓을 하는 그는 자칭 가수라고

할지모르나 그건 가수가 할짓이 아닌 치사한 행위이며 그 따위로 죄만 지으면서까지

가수를 몇년하다가 늙어 죽으면 무슨 보람이 있겠는지 용의자는 살아있을때 자신이 한

행위로 인해 남에게 욕먹을 죄들만 짓고 죽는다는것을 그들은 모르는게 한심할 뿐이다.


그들은 조훈님이 활동할땐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을꺼고...

설사 태어났다하더래도 완전히 어렸을때일꺼고...
그러니 조훈님이 누군지 그들은 당연히 모를 것이다.

40년전에 입산하느라 평생을 만화를 그린 만화가직업과 여가때 라이브활동을 하던
가수까지 은퇴하듯 그만두고 입산해서 수도생활을 수십년을 하다보니 만화계고 가요계고

옛날 얘기같이 됐고 대본찰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뜻한바 있어 민가에 평생을 닦은 문화예술로

이 세상을 밝히려고 포교원을 건립하여 대중포교인 음악미술쪽으로 포교를 하다보니

어느날 방송에 출연하여 새로운 장을 시도하느라 어차피 가수생활도 수십년전에

그만뒀으므로 이제 TV방송에 나와도 남들이 못알아볼거라 스스로 예측을 했던 것이다.

옛날야간업소손님들도 팬들도 기억에서 잊었을지도 누군지 모를것이라고 자위하며
그 옛날 수십년전에 극장가와 살롱가에서 째즈싱거로 날리던 가수가 아닌척했는데
방송제작진들도 조훈님이 가수로 활동하던 시대엔 태어나지도 않았을 모두 신세대

PD 작가들이라 당연히 조훈님을 알아보는 방송인들이 한명도 없었다.

일반참가자인척하고 예심에서 쉽게 통과를 하여 본선에 나갔는데 아주 젊은 심사위원이
가요계 4세대이후쯤되는지 심사를 보는 노래자랑프로였다.

예심때 구경온 주민 한사람이 조훈님을 알아보고는 제작진 음향기기담당자에게

저분 가수인데요~  야간업소에서 잘나가는 프로가수입니다라고 발설을 해서

아마추어노래자랑에 프로가수가 참가했다는 그일로 문제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가수협회나 가요계에서 좌지우지하는 가수들이 가수세대로 4세대나 5세대라면
나이가 50대에서 40대이전이 될것이다.

지금 활동하는 젊은 20대 가수들은 6세대 가수들이 될것이다.
만약 10대의 어린애들이 가수가 됐다면 가수세대로는 7세대쯤으로 보면 합당할것이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KBA 運營關理局 一同 記錄 ----------



조훈선생이 서울에서 활동할때인 1960년대는 컬러사진이 아닌 흑백사진 시대다.

서울 시내는 전차들이 다니며 길은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길이다. 영화도 흑백영화였다.


[1960년대 서울풍경] - 신촌로터리 1967년 -


[1960년대 서울풍경] - 연대앞 굴다리 -


[1960년대 서울풍경] - 이대 후문 -


[1960년대 서울풍경] - 이대 앞 -


[1960년대 서울풍경] - 신촌시장 -


이후 1960년대 말이 되며 1970년이 가까워지면서 컬러사진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사진관에서 붓으로 색칠을 한듯 흐릿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로는 발전된 것이라 할수있다.

[1960년대 서울풍경] - 신촌역 -


[1960년대 서울풍경] - 신촌로타리 전경 - 


1970년이 가까워지면서 컬러사진이 나오기 시작하며 컬러 초창기라 

색상이 흐릿하지만 흑백사진에 비하면 그래도 발전된 것이라 할수있다.

[1960년대 서울풍경] - 아카데미극장 -


1970년이 가까워지면서 대중문화가 진보되듯 이 사진도 당시로는 발전된 컬러사진이라 할수있다.

[1960년대 서울풍경] - 아카데미극장앞을 지나 덕수궁 방향으로 소공동골목 다음은 명동으로 향하는 길 -


- 아카데미극장앞을 지나덕수궁돌담길 그 다음이 소공동지나 명동이 된다 -



불가사의 인물로 영원불멸의 예술가로 일제시대이후 광복절인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고

이후 1950년에 625사변이 일어나 3살짜리 조훈님이 어머니 등에 업혀 피난길에 전쟁을 겪고 난후

새로 시작하는 한국의 문화예술계가 다시 피기 시작하는 한국대중문화 2세대들이 라디오를 통해

대중가요가 흘러나을때 가요계에 대중가요초창기의 1세대 가수들의 노래가 라디오와 축음기

유성기로 들을때다. 당시 가수들이 신카나리아 이난영 남인수 김정구 고복수 현인 고운봉

장세정 백설희등으로 1세대가 된다. 


TV는 없을때고 시골은 등잔호롱불로 밝힐때고 서울에만 전기불이 켜질때다.

모두 신기해서 서울에 가서 비포장 흙먼지길인 서울에서 그래도 전차도 다니고 시내버스도

여러대가 다닐때다. 조훈은 당시 15세였다. 서울에 상경하여 만화가와 가수를 하려고

1961년에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상경하여 중학교 1학년의 어린나이에 만화출판사에 찾아가

그곳의 전속작가인 한국의 원조 만화가 이재은씨 문화에 들어가서 심부름도 하며

만화수업을 하여 어린나이 15세에 최초 만화책 원고를 그리는 펜텃치담당이 되였다.


재능을 인정받고 이재은선생의 정식제자가 된 필자는 이듬해 이재은선생의 추천으로

16세에 당시 유행되는 독립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하였다.  이때가 1962년이다. 

당시 대중가요가 한국에서 시작이 되며 가요계의 2세대가수들이 누구인지는 당시 사회생활을

활발하게 활동을 한 조훈님인 대중문화 역사의 산증인에 의해 지금부터 밝혀지는 것이다.


묻혀져가는 대중문화의 흘러간 역사가 조훈님에 의해 자세히 밝혀지는 것이다.


한명숙이 노란샤쓰의 사나이를 부르고 박재란이 맹꽁이타령을 부르며

이금희가 키다리미스터김을 부르는 2세대가수들이 등장할때다.

남자가수로는 남일해가 특유의 저음가수로 등장하고 남상규도 극장쇼무대에

등장했고 허스키보이스로 한국의 낫킹콜로 불리우는 최희준을 비롯한 많은 가수들이

나오면서 그 당시 극장쇼가 유행되기 시작할때다.


그 당시 미8군쇼를 통해 째즈음악(요즘의 팝송)이 한국에 들어와 세계적인 록스타

엘비스프레슬리가 영화 [불루하와이]에 주연과 주제곡까지 부르며 한국에까지

유행을 일으켰는데 당시 한국가요계 2세대 가수들중에 째즈싱거들이 대거 등장하는데

남석훈 정원 쟈니리 챠리박 이태신 박형준 후랭키손등 많은 싱거들이 계속 나올때였다.


최초보컬그룹으로는 부르벨스가 있었다. 이후 쟈니브러더스 키보이스등 많은 보컬들이

가요계 2세대 보컬들이 된다. 필자인 조훈님은 그들보다 나이는 몇살쯤 어렸어도

시대를 그들과 함께 겪는 대중문화계의 2세대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당시 트위스트춤이 유행되며 트위스트김이 극장쇼에 등장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때였다.

조훈님은 만화작업하다가 틈만 나면 의자에서 일어나 화실에서 신나게 춤을 추었다.


신촌역전앞인 대현동에서 신촌 종점쪽으로 흙으로 된 비포장길을 200미터쯤 걸어가면 

신촌 로터리 입구에 작으마한 신영극장이 있었는데 가끔씩 쇼를 자주하는 극장이다.


조훈님은 틈만 나면 놀러갔다가 극장휴계실에서 트위스트춤을 추다가 때 마침

극장사장눈에 띄어 극장사장이 사장실로 조용히 불러 트위스트춤을 춰보라고 시켰는데

반주없이 추려니까 쑥스러워서 평소에 잘부르던 째즈곡으로 클라우드킹의 월버튼마운틴을

흥얼 흥얼 부르면서 춤을 췄더니 재주가 좋다며 노래를 또 해보라고 해서 몇곡을 불러

극장사장에게 인정을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분이 바로 한국쇼를 이끌어가는

요즘으로 말하면 극장쇼전문의 CEO였던 것이다.

 

드디어 소년째즈싱거 쟈니남(조훈)의 50년전의 최고 인기를 끌던 향수어린 추억의 스토리가 펼쳐진다.


글이 길어 다음페이지 2부로 계속됩니다~ 



< 東南亞世亞 藝術巨匠 歷史說話 >

급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속에서 불과 1년사이에 딴 세상이 된듯 하는 요즘 시대에선 

10년전의 사진인데 하이난과 강남 공연사진인데도 지금보면 어딘지 옛날사진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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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은 조훈선생님의 연세(나이)가 되면 기억력이 가물 가물한 분들도 많아 

자칫 대한민국의 옛 대중문화예술 역사가 파묻힐지도 모르나 유일하게도 조훈선생님은

별명이 만년 미소년답게 아직도 1950년대~ 1960년대의 현대가요가 처음 생길때부터

쭉 지켜보아온 역사의 산증인입니다~


다행인것이 별명이 만년 아기동자답게 하나도 안늙고 20년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나이보다 20년이 젊어보이는 기적의 주인공 60여년전 625사변을 다 겪은 장본인이며

대한민국 역사의 산증인 조훈선생이 아직도 청년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읍니다~

이시대를 함께 공존하는 여러 지인분들과 대중문화예술을 함께하는 동지여러분의

사랑의 덕이라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더욱 젊음을 유지하도록 건강관리에 힘을 쓰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중문화를 더욱 열심히 알리는 사람으로 열심히 살겠읍니다.

감사합니다.


한국 대중문화예술의 산증인 조훈선생의 기록지

大衆文化藝術巨匠의 역사편 2부를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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