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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仁 文化 遺蹟地] 文貞公 靜菴 趙光祖 大監 墓 및 神道碑 文化 遺蹟 深谷書院

Platonic love 2013. 4. 11. 09:29

 

역사에 영원히 빛나는 위대한 인물 청렴결백한 선비 정암 조광조 대감 이야기 

 

 

 

 

[龍仁 文化 遺蹟地] 文貞公 靜菴 趙光祖 大監 墓 및 神道碑 文化 遺蹟 深谷書院

[용인 문화 유적지] 문정공 정암 조광조 대감 묘 및 신도비 문화 유적 심곡서원

 

 

 

 

 

 

- 文化 遺蹟地 - 

深谷書院 ( 심곡서원 )

 

종 목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7호 

지 정 일 1972.05.04

소 재 지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203-2

시 대 조선시대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정암 조광조(1482∼1519) 선생의 뜻을 기리고 제사지내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선생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사림파의 대표로 급진적인 사회개혁정치를 추진하다가 기묘사화(1519) 때 죽음을 당하였다. 효종 원년(1649)에 세워 ‘심곡’이라는 현판과 이름과 토지·노비 등을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무사했던 전국 47개 서원 중의 하나로서, 선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다.

 

마을 뒤쪽 야산에 서쪽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입구의 홍살문과 내삼문·외삼문·강당인 일소당·사당이 거의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강당은 서원 안의 여러 행사와 유림이 모여 회의와 학문을 토론하던 장소로서 각 칸마다 널문을 달아 사면을 전부 열 수 있게 하였다.

 

가장 보존상태가 좋은 사당은 앞면에 트인 퇴칸이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방화벽을 설치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으며, 내삼문은 3칸의 솟을대문 형식이다.

 

 

 

< 歷史 香氣中 說話 역사의 향기속에 그리운 향수의 이야기 >

 

지금으로 부터 50년전의 이야기다.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상현리 서원말의 깊은말 동네에 있는 대감댁 할아버지 집에서 자란 청하 조원형 화백이

어린 시절에 아이들과 집앞에 서원말 동네 건너편에 있는 서원에 자주 놀러 갔었던 곳이다. 

 

조상 할아버지이신 조광조 대감님의 서원으로 지금은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의 고장 용인의 자랑스러운 문화재다. 

선대 조상 할어버지의 선비로써의 청렴과 기개와 충절이 단연 최고이신

文貞公 靜菴 趙光祖 大監(문정공 정암 조광조 대감)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심곡서원이다.

 

 

 

 

 

조광조대감이 직접 심었다는 심곡서원에 있는 느티나무 

 

 

1750년 전후반 경에  그린 정암 조광조 대감의 영정

 

 

 

 

 

 

 

 

 

 

 

- 文化 遺蹟地 - 

文貞公 靜菴 趙光祖 大監 墓 및 神道碑 ( 문정공 정암 조광조 대감 묘 및 신도비 )

 

종 목  경기도 기념물  제169호

지 정 일 1999.10.18
소 재 지 경기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산55-1
시 대 조선시대


정암 조광조의 묘소는 수지구 상현동(서원말)에 있다. 묘는 정경부인으로 추증된 이씨와 합장한 것이다. 묘 앞에는 대리석으로 묘표와 평상석·향로석·좌우에는 망주석·문인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신도비는 선조18년(1585) 건립된 것으로 재료는 대리석이며 높이 244㎝, 폭 93㎝, 두께 34㎝의 규모이다. 장방형 비좌 에는 국화문이 조각되어 아무런 치장이 없는 품격 높은 비신과 조화를 이루었다. 비 앞면 상단에는 전자로「문정공정암조선생신도비명」이라 횡서했다.

 

신도비문은 노수신이 짓고, 이산해가 글씨를 썼으며, 김응남이 전을 썼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중종때의 학자·문신으로, 자는 효직, 호는 정암, 본관은 한양이다. 김굉필 에게 수학하였다. 중종 5년(1510) 진사, 중종 10년(1515) 알성문과에 급제한 뒤 전적·감찰을 역림하였다. 중종의 총애를 받으면서 유교로써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아 왕도정치 를 실현케 했고, 소격서의 폐지를 단행케 했다.

 

대사헌에 올라 신진사류를 과감히 등용케 하고, 정국공신의 훈공을 대폭 삭제하는 등 급진적 개혁을 단행하여 훈구파의 반발을 샀다. 훈구파의 남곤 ·심정 등이 무고하여 능주에 유배되었다가 뒤에 사사되었다. 선조 초에 신원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시호는 문정이다. 문집으로 「정암집」이 있다. 

 

 

 

 

 

 

 

 

 

문정공 정암 조광조대감의 공적을 기리는 하마비 심곡서원앞 길 건너편에 있다. 

 

하마비 앞을 지나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려야 한다.

여기에는 서원에 모셔진 선조의 공적에 경의를 표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사진자료 : 한양조씨 양절공파 종친회의 일부사진들과 인터넷뉴스의 일부사진이 함께 포함되었읍니다.

 

 

< 글 올린이 : 한양조씨 제16대 후손 청하 조원형 화백 拜上 >

 

경기도 용인군 수지면 상현리 400번지에서 출생

 

용인군 수지면에 있는 수지국민학교(전교미술대회에서 미술상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간 수상자) 졸업

용인군 수지면에 있는 문정중학교(미술 특기로 입학한 장학생) 졸업

 

고향에서 학교 졸업 이후 서울 상경하여 최연소 만화작가로 데뷔

틈틈히 홍익대학교 미술전문대학에서 수강생 당시 천경자 교수

 

이후 불문에 귀의 수십년간 수도생활 각 사찰 주지역임

불화 동양화 미인도 일러스트 작가 포함 다 방면에 문화예술가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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