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전특선작가 청하화백 작품 극락정토도 수월관음도 한복미인도 靑趙音畵映像坊

畵中錦繡江山❤️/청하미술전

청하미술 - 추억의 화첩 - 스케치북

Platonic love 2021. 3. 12. 06:02

 

 

청하 조원각스님(본명 : 조원형)화백의 추억의 화첩

 

 

1983년경 37년전에 불화를 연구하느라 그린 후불탱화 사천왕상 연필 초안인데 지금 봐도 꽤 잘된 연필화

 

 

 

 

비슷한 시기에 그린 연필화 청하 조원형화백의 스켓치 연필뎃상 초본화

 

 

 

1979년무렵 인조대왕과 미인궁중도로 국전 특선하고 그때부터 화랑가를 내집처럼 드나들던 청하 조원형화백이

인사동에 제일 큰화랑인 본화랑 쇼파에 앉아서 당시 형같이 사귀던 본화랑사장이 보는 앞에서 즉흥으로

스케치북에 낙서하듯 그림을 그렸는데 윗그림과 아래그림을 모두 합쳐서 재빨리 2분만에 그린 최고 속기 달필 그림이다

 

 

 

이 그림도 청하 조원형화백이 스케치북에 포스터칼라로 청포도를 그리다만 미완성 그림이다

 

 

 

이 그림은 1980년도에 하와이섬에 야자수 바나나 과일을 따는 여인들을 즉석에서

이야기하며 재빨리 그린 청하 조원형화백의 초속기 만화삽화풍의 뎃상펜터치식의 그림이다

 

 

 

ⓒblog.daum.net/happy102056

 

 


 

1960년부터 1970년대 그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 동양화 화단에 기라성같은 화가들이 찬란하던 무렵이다

필자가 일찍부터 미술계에서 활동을 하여 언변솜씨도 뛰어난데다 다니면서 눈도장들을 꽤 많이 찍어놔서

대한민국미술계에 대가들하고만 사귀어 작가들중에 내나이가 가장 어렸어도 아는 사람들은 전부 대선배들뿐이다

즉, 국전 심사위원들 위치의 최고 대가들만 사귀었으니 작가들중에 내또래들은 나하고는 아예 거리감이 멀어서

어떤때는 꼭 내가 대선배가 된거같이 착각을 할정도로 자연적으로 비슷한 연배들은 그냥 지나치게 되고

즉, 그 사람들의 스승들을 사귀는 식이다

당시 인사동에는 2층건물 전체를 화실로 쓰고 있는 대선배화가가 있었는데 국전 특선에 입선도 여러 차례 한

그 유명한 수당화백이다

그 분의 제자들이 나이가 필자보다 나이가 많거나 비슷한 연배들인데도 필자는 그분들의 스승되는 수당선생을

찾아갈 정도로 활동을 하다 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서론이고 본론으로 쓰면 동양화 화단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대가로 청당 김명제화백은 화조 산수화로는

대한민국 최고의 대화백이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인 국전에서 특선을 수차례를 했고 입선은 수십차례에 

한국 미술계 최고의 거장이다 청당 김명제화백이 명동 미도파백화점 3층에서 개인전을 했는데 필자는 초대작가들중에

나이가 가장 어린 30세 밖에 안된 작가였다 대한민국 미술계 최정상의 작가들이 모두 모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류화가 천경자화백도 함께 참석하였다 필자 또래는 한명도 없고 전부 대선배들뿐이다

내가 왜 이 수필을 쓰냐하면 그때 참석한 대가들이 지금은 거의 타계들을 했으니 그 당시 나이가 제일 어린 필자만 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선배화가들이 모두 돌아가셨으니 혼자 남은 필자도 어느듯 반백년이 훨씬 더 넘어 

인생사 무상함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화단에서 필자한테 잘 해줬던 대가 선배들한테 아직 신세도 못갚았는데 세월이 흐른 것이다

몇십년후인 오늘날에 이 글을 쓰는 필자도 언젠가는 선배들의 뒤를 따라 가겠지

 

그 선배들의 도움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상전 국전에서 최고의 대상인 특선을 했지만 필자의 대표작인

仁祖大王과 美人宮中圖( 원제 : 역사의 향기속에서 )는 필자가 많이 사용하는 지본이 아닌 최초로

비단에 채색화로 세필붓으로 그린 작품인데 조선 최고의 궁궐인 경복궁의 웅장한 2층 지붕은 물론 건물 전체가 화려한 단청 문양까지 세필로 묘사를 했고 대스팩타클한 수백명의 인물들을 묘사했고 중앙에는 인조대왕과

중전왕후가 미소를 지으며 보고있는 앞에서 널을 뛰고있는 궁녀들과 주위에 세밀하게 묘사한 관중들까지

세밀하게 옷에 무늬까지 모두 그린데다 화면 주위 전체인 궁중도를 화려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국전사상

유례가 없는 대작에 작품을 구경하는 구경꾼들이 모두 반한 최고의 작품에 당연히 대상이 되고도 남는

최고의 평들이 감탄들로 하루 종일 구경들만 하는 진풍경이 전시장에 꽉 차있던 전시회였다

그런데 국전 대상후보 출품작 치고는 싸이즈가 작은 편인 규격의 120cm x 80cm 쯤으로 51호 정도라 출품에

의미를 뒀었는데 이날 전시장에 가장 돋보인 작품으로 최고 인기였던 이 그림으로 원체 화려하게 잘되어

작은 크기의 작품이 대통령상후보에 까지 올랐다는 이 그림으로 당연히 최고의 특선인 것이다

 

필자가 피치못할 사정에 의해 인사동 고촌화랑에서 아깝게도 그렇게 되어 그림을 지키지 못한 것을 두고 두고 후회를 했다

 

이후 나자신이 더욱 크게 성공을 하기위해 결심을 하게된다 그리고는 입산을 하여

어느 정도의 수행을 했고 내 인생의 재정비를 하고 다시 최정상을 향한 꿈을 현실화하기 위해 펼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예도인 예당 청하의 화백아호는 대한민국 최고의 화가들중에

허백련許百鍊화백의 의도인毅道人을 따서 예도인藝道人으로 했고

이당 김은호(以堂 金殷鎬)화백의 이당以堂을 따서 예당藝堂으로 했고

청당 김명제青堂 金明濟화백의 청당青堂을 따서 청하靑夏로 화가아호의 영향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 지면상 중략한다 ~~~~~~

 

 

藝道人 藝堂 靑夏 趙源衡 自敍傳 記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