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옛날 반세기전의 추억속으로 빽퓨더투쳐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금으로 부터 50년전 이야기다.
1960년대의 이야기로 앞에 페이지에 빠진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힐까 한다.
서울 광화문 종로 퇴계로 명동 일대에는 당시 뮤직홀과 살롱이 성행할때였다.
하루는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소년가수 조훈은 챙피하다고 깎아댈지 몰라도 보조급 용돈이나 받는 어린가수지만 나는 떳떳하고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은 누가 어린나이에 뮤직홀에서 째즈를 부르겠나하고 자랑스럽기도 했던건 사실이다.
후일 원로 음악평론가가 됐던 그 당시 쎄시봉의 스페셜 공연무대 사회자인 이백천씨가 그날 사회를 봤고 쟈니부러더스가 출연가수였는데 노래공연이 끝나고 좌담회가 벌어졌는데 음악감상평론코너에서 언쟁이 벌어진 것이다.
오기택선배의 대중가요 남산부루스가 나왔고 이백천씨가 쟈니부러더스에게 감상소감을 물었는데 쟈니부러더스의 리더되는 분이 왜색가요같다고 평을 언급한 것이 말다툼이 되었다.
그 당시 쎄시봉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연예인이 출연하는 코너가 있었다. 방송에 나오는 일급프로가수가 나오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날은 쟈니부러더스공연날로 일정이 되어 있는 날이라 평일 휴계 게스트 코너에서 째즈를 부르는 조훈은 이날은 그냥 놀러간 정도였다
쟈니부러더스멤버들중에 내가 아는 이름은 김준선배뿐이다.
미안하지만 리더되는 분이나 다른 멤버들 이름은 모른다.
다음날 그 얘기를 들은 오기택선배가 노발대발하여 쟈니부러더스를 남산에 끌고 올라가 한시간이 넘게 자신의 노래 남산부루스를 설명하였다.
아무리 수양이 많이 됐다고 자부하는 조훈도 자존심갖고 사는 사람인데 은근히 혈압이 상승되려고 해서 대한가수협회에 대부분 조훈이 활동하던 1960년대 훨씬 이후인 최근 가수들이 운영을 주도하는 협회측 가수들이 예전의 조훈을 본적이 없는 사람들은 오직 현재 상황만 갖고 논하는 데에 문제이므로 답답한 친구들에게 열변을 토해야 겠다.
내가 그 당시에 가수가 아니면 어떻게 이렇게 자세하게 이야기 하겠나 말이다.
어린 나이에 잘나가는 스타급이라고 자화자찬같지만 최연소만화가가 만화그리기도 바쁜데다 틈틈히 노래까지 하랴 바쁜사람이 할일이 없이 매일 밤낮으로 수년동안을 가수들 따라 다닐리가 있겠는가? 그 당시 소년째즈가수는 나 한사람뿐이였다.
물론 김태영소녀가수가 있었지만 그녀는 아코디온을 둘러 메고 대중가요를 불렀었다.
만약에 못 믿는 주동자들이 있다하더라도 고소하기도 싫고 승소를 해도 좋을 것도 없고 이긴자나 진자나 망신만 될뿐이므로 내가 수도자로써 지도자답게 참는다는 것만 알고 그래도 의심하는 자는 소인배일것이므로 무시하겠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런 거짓말을 하겠나?
증거는 무궁무진하므로 만약에 더 이상 토를 달고 분위기를 조장하는 자에게는 나의 모든것을 총동원하여 스님의 명예와 만화작가의 명예 화가의 명예 화가가수의 명예를 포함한 사회적과 모든 명예훼손에 대한건 물론 인신공격에 대한 것으로 간주하고 고소를 벼를수도 있다.
뭐 눈엔 뭐가 보인다고 사기꾼 눈엔 남도 자기하고 똑같은 줄 알고
자기 기준에 맞춰서 미리 평가를 오버 하는건 큰 실례이고
실수를 하는 것이므로 누구를 막론하고 명심에 또 명심을 해야 할 것이다.
내 이름이 좋아서 자꾸 쓰려고 하는 후배가수들에게 다음과 같이 아래에 이름을 지어 놨으니 각자 마음에 드는 이름을 골라서 쓰면 될 것이다.
조훈남 조훈일 조훈진 조훈철 조훈상 조훈날
조일훈 조태훈 조남훈 조지훈 조영훈 조철훈